• 2024/11/29 체격이 좋있기에 타인에게 공포심을 주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것을 나타내는 에피소드가 "술에 취하면 '나 같은 건 바깥으로 한 발짝 나가면 괴물 취급을 받으니까'라고 말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특히 스모를 그만뒀을 때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의 차이를 느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격투기 세계에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격투기를 한다면 괴물이 아니다'라고 말이죠.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하며 주위에서 '요코즈나'라고 칭송받던 상냥함의 이면에 있던 '본심'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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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9 욘사마는 특수한 캐릭터다. 남자다우면서도 여자 같은 구석도 있고 고류지(広隆寺, 광륭사)의 불상을 닮은 얼굴이 치아를 드러내고 웃는데 벗으면 또 굉장하다. 게다가 고난이 쉴 새 없이 닥친다. / 어쩌면 드라마는 한국 여자의 소망인지도 모른다. 은연중에 남녀 간의 애정을 갈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차피 환상이라는 걸 알기에 일본 아줌마인 나도 깊이 빠졌던 것이리라. /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가 뇌종양이었다가 급기야 실명까지. 그 나라 사람들은 다들 마조히즘인가? 또 처음부터 끝까지 삼각관계다. 가망 없는 남자의 스토킹 행위는 무시무시하다. 그 나라에서 통용되는 사랑은 이런 건가? 내가 좋아한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내 마음은 내 거야. 몸은 마음을 따를 수밖에 없어.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아. 가능성이 없다는 걸 서른 번은 확인했으면서도 술에 잔뜩 취해 울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의 축구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포기하지 않는다. 잊지 않는다. 일본의 과거를 잊어주면 좋겠다고 꿈에도 바라선 안 된다. 잊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남자가 눈물을 대량으로 쏟는다. 그 나라에는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원칙이 없는 모양이다.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는데, 나는 욘사마의 눈물에 당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공과 사를 혼동한다. 남자도 여자도 사랑 때문에 동료나 일 따위 내팽개쳐버린다. 그 나라의 생산율이 심히 걱정되었다. 그러니 대통령도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것이리라. 벗으면 남성미가 넘치지만 평소엔 늘 고독감을 풍긴다. 곤란하다. 지켜주고 싶은 건지 보호받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상징적인 영상은 스크린 한가운데에 선 욘사마의 뒷모습이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저녁놀이기도 하고 바다이기도 한데, 아무튼 굉장히 부끄러운 장면이다. 비현실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침을 흘린다. 보통 넉살이 아니면 손발이 오글거려서 못하는 짓(예를 들면 빨간 장미 500송이를 바닥에 하트 모양으로 놓고 남자가 그 안에 앉아 있는 드라마도 있었다), 일본 남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을 욘사마는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웃으며 태연히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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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9 햣켄이라는 사람은 눈이 배꼽 주변에 붙어 있고, 마음도 뇌나 심장에 있는 게 아니라 명치 부근에 있는 게 분명하다. 글도 배꼽 부근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이따금 흠칫한다. 햣켄은 시각 장애인인 미야기 미치오에게 “장님도 미인을 알아볼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마음이 뇌 부근에 있는 사람은 절대 묻지 않을 질문이리라. 미야기 미치오는 “압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주변의 공기로 안다고 한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못생겼다는 건 장님한테도 들킨다. 어떻게 그런 걸 묻나. 아니, 잘 물어주었다. 장님도 미인을 좋아한다는 걸 잘 가르쳐주었다. 나는 좀 더 흠칫하고 싶다. 나는 노인이 되어서야 햣켄이 좋다고 대놓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노인이 되어서야 내가 이 세상에 뭘 하러 왔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엔 이렇다 할 볼일이 없다. 볼일은 없는데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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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9 혐오와 차별의 태도, 언어에 맞서는 일은 중요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위의 조언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나도 천명륜이 뇌성마비 장애를 흉내내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고 피곤한 싸움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도덕적으로 청소된 언어와 이미지 공간보다 더 복잡하다. 분명 천명륜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이었고 그 점에서도 나와 완전히 달랐다. ‘어쩌다 보니’ 같은 방을 쓰게 되어 우리는 늘 몸과 몸으로 붙어 있어야 했다. 그 과정은 갈등, 대립, 교섭의 연속이었다.  그는 2003년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블로그의 마지막 게시물에 그가 적었다.  “같이 걸을 때 가끔 원영이 형과 어깨동무를 한 채 걷고 싶다. 그런 적이 없고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대신 휠체어 손잡이로 그 느낌이 전해져오기도 하여, 형의 뒤에서 뒷머리를 바라보며 같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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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9 자기 언어, 자기 세계를 갖는다는 건 힘겨운 투쟁이에요 / 곡 쓰는 일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모르겠어요.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나이브해서 가짜 같애, 인스턴트같잖아요. 사랑보다는 그냥 헌신의 마음이라고 해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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